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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에세이

아무 대책이 없는 "퇴사" 도 괜찮다.

by 온라인 건물주 최사장 2021. 12. 30.

30대 후반의 나이로, 아무 대책없이 퇴사했다.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직할 곳을 찾아둔 것도 아니고,

멋진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준비해둔 것도 아니다.

 

퇴사 혹은 창업에 대한 책이나 글들을 읽어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회사에 있을 때 충분히 준비하고, 월급만큼 벌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유명한 유튜버 "신사임당"도 퇴사 전 이미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고 하고, 심지어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하여 월 1,0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은 퇴사하지 않고도 추가로 수입을 얻고 있다고 한다. 

 

맞는말이다. 창업이나 자영업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10명 중 1~2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 대책없이 퇴사 후 뭔가 해보겠다고 그 때부터 찾게 된다면 몇 개월 시간을 허비한 후 "텅장(돈이 없는 통장)"을 보고 돈에 쫓기다가 다시 직장으로 가거나 (이직이 잘 되면 다행이다)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나는 늦은 나이에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자격증 시험으로 3년, 창업으로 1년, 프로그래밍 공부로 1년을 보내고 나니 33살에 첫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다. 경력이 없기 때문에 3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멀쩡한 회사를 입사한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회사생활을 대충할 생각은 없었기에 당연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사업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는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회사에 다니며 창업과 관련된 서적이나 성공스토리를 시간이 날 때마다 보았고, 그 꿈의 불씨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회사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저녁 10시, 11시에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회식으로 저녁 늦게까지 있었다. 일은 끝이 없어 한참 때는 거의 매주 토요일에 나와서 일을 했고, 심지어 최장 50일까지 연속으로 출근했던 적도 있었다. 조금 시간이 날 것 같을 때 정신을 차리고 뭔가 구상하거나 준비하려고 하면 1주를 넘기지 못했다. 매주 성과, 실적, 향후 계획에 대한 압박, 항상 임박한 데드라인 등으로 마음 놓고 여유를 가진 때가 거의 없었다. 상시 긴장상태를 유지하다보니 항상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넘쳐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몸도 망가져서 100kg 가까이 살이 찌기도 하고 만성피로, 무기력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경우라면 "회사에 있을 때 충분히 준비하고, 월급만큼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위대한 사람이라면 잠을 3~4시간 씩 자고, 1주일에 하루라도 확보해서 만들어 나가겠지만 나는 "위인"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이미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거의 5년을 버텼다. 2년 연속 진급도 했고, 연봉도 처음보다 2배는 올랐다. 잠깐 한가할 때는 이렇게 인정받으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하지만 일이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일에 성취감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성과가 나도 정해진 월급만 받아야 했고, 사업체가 성장해도 내 지분은 없었다. 지금보다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내 성과대로 돈을 벌고 싶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어짜피 365일 일해야 한다면, 내가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밖으로 표출이 되는지, 처음엔 창업멤버처럼 일하고 고민했지만, 점점 회사의 구성원이 되고, 처음엔 신입이나 3년차 미만만 채용하다가 조직이 성장하면서 나보다 윗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는것을 느꼈다. 더 이상 있는건 의미가 없었다. 퇴사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그렇듯) 입사할 때부터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년 이상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결국 끝까지 결정이 어려웠지만, 다행이(?) 거취를 제대로 결정하라는 압박이 있어 퇴사할 수 있었다. 

 

퇴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가진 것도 없고, 기술도 없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직은 할 수는 있었겠지만, 내가 있는 도메인에서 같은 일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퇴사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12월 1일 부로 정식으로 퇴사처리가 되었으니, 이제 딱 1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시도해 보았지만, 성과는 없다. 이제 돈도 안들어온다. 사실 1년 안에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두렵다. 퇴사 후 2주 동안 시도하다 실패를 하니, 후회감이 잠깐 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포기않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 즐겁다. 누군가의 지시나, 압박감 없이 내 스스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30대 후반에 한 대책 없는 퇴사.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주변 사람들도 의아해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라도 이렇게 도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사는 인생을 평생 후회와 고통속에서만 살고 싶지 않았다. 어짜피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면, 적어도 내 마음대로 해보고 고통을 겪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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